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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화재 사건 및 역사

by #_;~> 2023. 11. 24.

낙산사의 역사와 전설
강원도 양양의 강현면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낙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찰은 믿음에 깊이 뿌리를 둔 곳으로, 관세음보살이 머무른다는 전설의 보타락가산, 즉 낙산 또는 오봉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문무왕 시절인 671년에 의상 대사에 의해 처음으로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의상 대사는 오봉산에서 관세음보살을 만나기 위해 27일 동안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슬픔에 휩싸여 바다로 몸을 던지려 했습니다. 이 순간, 바다 근처의 굴에서는 관세음보살의 희미한 형체가 나타나며, 그에게 여의주와 수정염주를 주었고, 산의 꼭대기로 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이곳이 원통보전의 원래 위치라는 것을 알게 된 의상 대사는 이를 기리기 위해 "낙산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낙산사 주변에는 의상대, 홍련암 등 여러 부속 건물이 함께 위치하며, 이 전체 지역은 국가의 사적 제495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낙산사는 관음기도의 중심지로서, 관동지역의 팔경 중 하나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사찰 내부에는 조선 세조 시기에 재건립된 7층석탑, 원통보전, 그리고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과 홍예문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낙산사의 소실 및 복원의 오랜 흔적
2005년에 일어난 대화재 이전, 낙산사는 수차례의 파괴와 복원을 겪었습니다. 신라 시대의 헌안왕 2년(858년)에 범일 대사의 주도하에 중창하였으나, 고려 고종 18년(1231년)에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조선의 억불 군주였던 태종은 이를 복원하기 위한 법회를 주최하였고, 세조 13년(1467년)에는 왕의 명령으로 다시 한번 크게 복원되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화재의 피해를 다시 한번 받았습니다. 인조 시기에도 여러 차례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고, 정조 원년(1777년)에 화재로 다시 한번 파괴된 후, 이듬해에는 다시 중건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중 6.25 전쟁으로 인해 다시 소실되었으나, 1953년에는 완전히 재건립되었습니다.

2005년 4월 4일, 낙산사는 잊을 수 없는 대형 산불의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 산불은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낙산사 주변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헬기조차 다른 지역의 화재 진압에 투입되어 낙산사로 오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화재 현장에 도착한 소방차조차 불길에 둘러싸여 타버리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낙산사의 승려들과 신도들은 소화기를 사용하여 화재를 진압하려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허사가 되었습니다.

이 화재로 인해, 보물 제479호로 지정되었던 낙산사의 동종은 녹아버려 소실되었습니다. 원래 금속 종이 녹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지만, 산불의 온도는 생각 이상으로 매우 높습니다. 이렇게 높은 온도 아래에서는 천°C 근반의 녹는점을 가진 구리나 청동조차도 쉽게 녹을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종이 떨어져서 땅에 닿았다면 덜 피해를 볼 수도 있었겠지만, 종루가 화재에 타고 종이 덮여 화덕 상태가 되어버린 탓에 종은 완전히 녹아버린 것으로 추측됩니다.

낙산사 화재는 2005년에 일어난 산불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화재로 인해, 낙산사에 있는 여러 건물들이 타버렸습니다. 이 중에는 원통보전, 홍련암, 백련암, 석조탑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피해로 인해, 낙산사의 복원 작업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낙산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신앙의 중심지로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많은 신도들이 찾아와 관음기도를 드립니다.